Remaking the Death of Vagina

2020년 5월 <버자이나의 죽음> 재작업 첫 온라인 미팅 후.

 

-요즘 주로 생각하는 것이나, 관심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전 지난 나츠코와 베누리와의 리서치에서 식민주의, 근대화가 소위 전통이라고 불리는 것이나 문화에 미친 영향을 논의했었고, 석사 논문을 쓰면서 종교와 관습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어요.

최근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온난화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숲의 보존 등과 관련한 글들을 읽다가, 식민주의와 근대화가 숲과 농경에 끼친 영향을 보게 되고 그것이 이전의 리서치와 다 맞물리게 되었네요.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된 대량-산업 농경화 과정이 동남아시아의 보르네오 섬에 사는 원주민들의 숲과 농경과 생활에 끼친 영향. 자급을 위한 농경(substance)이 팔기 위한 농경(commodity)으로 규모와 방식이 바뀌면서,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가 바뀌고, 그로인해 원주민 부족 안의 신앙, 제의, 공동체 생활에 다 영향을 미쳤어요. 전통 농경 사이클의 부분들이었던 공동 노동과 제의가 사라지게 되었죠.

어떤 방식으로 식량을 생산하느냐는 곧 인간이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인간들끼리 어떻게 어울러져 살아갈 것인지의 문제였어요.

대량농경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그것을 거부하는 원주민, 혹은 변화하더라도 전통 농경을 고수하려는 원주민들이 있었는데 , 그 요인에는 그들의 코스몰로지, 혹은 숲의 스피릿에 대한 신앙의 물화, 즉 그들의 무의식과 꿈에 나타나 경고하는 나무와 작물때문이었어요.

 

이 모습은 현시대를 엔스로포르세로 명칭하고 비판하면서, 지금까지 인간이 자연과 스스로를 분리하고 착취해 온 방식을 반성하고, 어떻게 다르게 관계 맺을 것인지, 그에 대한 가능성의 이론들을 제시하는 글들의 예시가 된다고 할까요?

원주민들이 자연을 자신과 대칭으로 두고, 순환적으로 이용하던 방식들.

위의 에코 페미니스트들의 이론 중에서 특히 영감을 줬던 문장들은 인간이 비인간종 Non-human species 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 그들과 어떻게 친족Kin을 맺을까? 그들과 어떻게 협업할 수 있을까? 그들의 권리를 어떻게 대변해 줄 수 있을까? 등 이었어요. 누군가는 박테리아와 킨을 맺고, 누군가는 버섯과 킨을 맺는다는 것처럼.

앞서말한 대량농경을 거부한 원주민들은 그들의 숲과 나무와 농작물과 그것들의 스피릿과 킨을 맺고 있었다고 볼수 있겠죠. 원주민의 꿈에 나타나 위험을 경고함으로써, 원주민으로 하여금 숲과 전통농경을 보호하도록 했던 스피릿을 하나의 생태계 보호의 요인이라고 볼 수 있게되죠.

 

지금 이 시대에 여신신화들과 그 속의 여신성의 변천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고 질문이 들었어요.

여신 또한 (비록 그리스 인도 판테온은 인격화되어있지만) 비인간종, 스피릿, 자연의 생산과 죽음의 사이클과 연관된 존재로서 보고, 이 작업을 통해 그와 협업 한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그의 소리를 지금의 나를 통해서 낸다고 생각하면?

생태와 환경문제를 염두하며 그 목소리를 더듬어보면, 가부장적 신화의 여신이 가부장적 시스템속 의 자연과 중첩되고 확장되어, 지난 작업에서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더 접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또 언제나 ‘나’의 것이 아닌 ‘다른’ 존재의 소리를 내 몸을 통해 대신 내는 샤먼적인 행위는 생각지도 못한, 대단한 힘을 발휘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여신성’을 여성성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닌 (지금의 페미니즘이 여성의 인권만이 아닌, 남성과 또 다른 성의 인권을 대변하고,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합쳐진 구조를 비판하는 것처럼)

오히려 원시-고대-근/현대의 신식민주의적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사회로 진행된 동안 계속 가리거나 내치려고 했던 ‘무엇’을 덤드어보는 것. 근엄한 지중해 여신이 순결한 여인으로, 자연적 힘이 미모의 여신으로 바뀌는 동안 가려졌던 것.

이렇게 보면 더 원시적인 여신성이란 자연의 힘과 주기에 더 가까워질까요?

결국 비인간종과 인간종이란 분리된 것이 아니고 모두 자연에 포함되듯이, 여신이라는 비인간은, 인간이 가장 자연적인 상태일 때 드러났다 사라지겠다 싶어요. 현재 우리의 몸, 성, 꿈, 무의식에서 드러났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증상들이 현대인들을 원시의 사람들과 연결되는 통로이자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성을 느낄 수 있는 통로. 우리의 가장 오래된 기억. (이건 현존하는 9세기 나가 신 제의를 가리키며 누가 했던 말…)

자 이것을 어떻게 접근하고 방법으로 할까는 앞으로 계속 생각해봐야죠.

딱 드는 생각은, 이 작업의 동료와 관객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Centralized vs. Decentralized), 작업의 리서치를 어떻게 하고, 나와 동료들의 몸과 언어를 어떻게 대우하고, 작업의 과정과 결과물을 어떻게 연결하고, 어떤 결과를 예상하느냐? (모두 계산된, 스코어에 따르는,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등)

이 모든 작업의 체제가, 우리가 지구와 자연과 인간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사용하는 지를 보여주는 소우주인데, 우리가 이 작은 소우주 안에서 다른 대안적인 체제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생각할 것이 많지만 여기까지 첫한 발.